“하나님은 여전히 소망이시다”

JCS(Jeju Christian School, 이하 기독학교) 학생 16명과 교사 4명, 총 20명의 인원이 2025년 10월 13일부터 22일까지 스리랑카로 전도여행을 다녀왔습니다. 기독학교는 1년이 4쿼터제로 진행되는데, 여름방학 이후 3쿼터 전부가 전도여행을 준비하고 실행하는 시간으로 쓰입니다. 그만큼 많은 시간과 재정이 전도여행에 들어갑니다. 그만큼 우리 기독학교에서 전도여행은 큰 가치를 두는 교육과정입니다.
전도여행지를 결정하는 것도 YWAM에서 하는 방식대로, 학생과 교사 모두가 함께 모여 음성을 듣고 결정하였습니다. 그렇게 이번에 결정된 곳이 스리랑카였습니다. 우리 기독학교 교사와 학생 모두 스리랑카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그저 저 멀리 있는 홍차로 유명한 불교 국가라는 정도가 전부였습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스리랑카를 압니다.
스리랑카에서 20년 이상 사역하고 계신 한국인 선교사님이 계십니다. ‘엔젤리나’라는 이름의 한국인 선교사님과 연결되어 5일 동안 세 곳의 학교, 네 곳의 교회, 그리고 한 곳의 카페에서 사역을 하였습니다. 우리가 준비한 것은 한삼, 부채춤, 워십댄스 2곡, 밴드 공연, 간증 3명, 어린이 사역과 한국 음식 사역이었습니다. 우리가 사역하는 곳의 상황에 따라 준비한 것들을 적절히 배치해 진행하였습니다. 짧고 타이트한 일정이었지만, 최선을 다해 가능한 많은 사역을 감당하였습니다.
이 사역이 가능하도록 거의 풀타임으로 우리와 함께하며 섬겨준 스리랑카 현지인 리더 스태프가 5명이 넘고, 그들과 함께 도움을 준 현지인들이 20명이 넘었습니다. 그 중심이 된 현지인 리더 스태프들은 선교사님이 스리랑카에서 열었던 DTS 1기 수료생들이었습니다. DTS를 수료한 지 15년이 지난 지금, 그들은 스리랑카의 교회와 학교, 그리고 다양한 사회 영역에서 영향력 있는 리더로 서 있습니다.
그들의 도움으로 우리는 스리랑카에서 사역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방문한 학교와 교회에서 만난 학생들과 아이들, 현지인들은 한 곳당 적게는 30명에서 많게는 300명에 이르렀습니다. 정말 수많은 스리랑카 학생들과 아이들 앞에서 공연하고, 그들과 함께 놀며 교제하였습니다. 그렇게 만난 그들의 따뜻한 환대와 뜨거운 환호는 우리의 기대를 훨씬 넘어섰습니다. 전도여행을 준비하면서 그렇게까지 큰 환영과 박수를 받게 될 줄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만큼 큰 사랑을 받았고, 큰 기쁨의 시간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전도여행의 시간이 다 기쁘고 좋고 행복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 알듯이, 우리에게도 어렵고 힘든 일이 있었습니다. 스리랑카에서는 손으로 밥을 먹습니다. 현지인들과 긴밀하게 협력하며 사역하는 우리는 그들의 문화를 존중하는 의미로 우리도 손으로 밥을 먹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그렇게 우리 모두는 손으로 밥을 먹었습니다. 맛있게 잘 먹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몇몇은 거의 먹기를 포기한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숙소에서 물이 잘 나오지 않아 불편한 건 기본이었고, 첫날은 남자 숙소 화장실 하수도가 막혀서 씻은 물이 바닥에 고인 채로 샤워를 해야 했습니다. 그것을 시작으로 화장실과 샤워기 수리를 위해 몇 번을 더 도움을 청해야 했습니다. 숙소가 그래도 괜찮은 편이었기에 쓸 수 있는 화장실이 3개였지만, 청결과 외모에 신경을 쓰는 우리의 십대 친구들에게 그건 결코 충분한 숫자가 아니었습니다.
첫날 밤은 시차와 여러 이유로 거의 밤을 새운 친구들도 있었고, 사역이 일찍 시작되는 날엔 씻기 위해 새벽 4시 반부터 일어나서 씻고 드라이를 하는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덕분에 그런 날은 아무리 피곤해도 강제 기상을 해야만 했습니다. 어떤 날은 다음 날 사역 준비를 위해 자정을 넘어 새벽까지 준비를 하였고, 할 일이 많았던 선생님은 거의 잠을 자지 못하였습니다.
그렇게 기본적으로 먹고, 씻고, 자는 것이 불편했지만, 감사한 것은 그로 인해 불평하거나 원망으로 어려워하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한 공간에서 20명의 어른과 아이가 함께 공동생활을 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불편함을 다들 함께 잘 감수하였습니다. 전도여행 기간이 길지 않았기에 괜찮았던 것도 있지만, 힘들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우리가 했던 모든 사역은 매우 성공적이었습니다. 감사하게도 기대 이상으로 좋은 반응과 호응이 있었고, 많은 사랑과 인정을 받았습니다. 사역을 하면서 우리는 모두 기쁘고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사역지에서 만난 현지인들은 사역이 끝난 후 헤어짐을 아쉬워하였고, 매번 그들에게 많은 감사의 인사와 섬김을 받았습니다.
우리의 전도여행이 그렇게만 마무리되었다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하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성공적인 사역에도 불구하고 우리 팀 안에는 관계의 역동과 갈등이 있었고, 그 갈등을 해결하지 못해 결국 한 명은 중간에 팀을 이탈하여 먼저 한국으로 돌아갔습니다. 그 갈등의 중심에 있었던 사람이 공교롭게도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입니다. 이것을 말하지 않고도 글을 쓸 수 있었겠지만, 굳이 이 불편한 진실을 밝히는 이유는 여기에 분명한 의미가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전도여행을 통해 우리에게 알려주고 싶으셨던 것은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 우리의 전도여행에서 중요하게 여기신 것은 무엇일까요? 잘 준비된 성공적인 사역? 복음을 모르는 현지인들을 대상으로 한 복음 전파와 영혼 구원? 혹은 그것을 위한 가교로서 현지인들과의 친밀한 교제와 좋은 관계 형성? 혹은 그들의 필요를 알고 섬기는 것?
다 중요하고 훌륭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닌 것 같습니다. 전도여행은 선교를 위한 단 한 번의 이벤트가 아니라, 하나님을 알아가는 여정 속에서 중요한 하나의 과정입니다. 그래서 전도여행은, 실은 모든 삶이 그러하듯 하나님을 위한 우리의 헌신과 봉사 이전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특별한 은혜이자 선물입니다. 그 시간을 통해 우리는 놀라운 은혜를 실제로 경험하며, 우리가 배워야 할 것들을 배우고 알아야 할 것들을 알게 됩니다.
이번 전도여행에서 제가 배운 것은 하나님이 소망이시라는 사실입니다. 내가 보기에 그렇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스리랑카 땅에도 하나님은 여전히 소망이십니다. 복음을 모르고 하나님을 모르는 그 수많은 스리랑카 사람들에게도 하나님은 여전히 소망이십니다. 스리랑카 선교사님과 함께 그 땅에서 그들을 위해 사역한 우리 팀 한 명 한 명에게도 하나님은 신실하게 소망이십니다. 풍요의 강물이 흐르는 부요한 땅이 아니라, 메마른 광야와 같은 내 마음에도 하나님은 변함없이 소망이십니다. 그렇게 우리의 참 소망 되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리고 그 하나님께서 보시는 내가 누구인지, 그것을 더 깊이 발견하고 깨닫게 된 시간이 이 전도여행이었습니다. 바로 하나님이 소망이시라는 그 진리입니다.
스리랑카 전도여행을 마친 제 마음에는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보호하심 안에서 우리 팀의 성공적인 사역으로 인한 기쁨뿐 아니라, 관계의 갈등으로 인한 실패감, 열등감, 수치심, 분노, 그리고 실망까지 모두 담겨 있습니다. 그 모든 것에 감사드립니다. 그 안에서 제가 진정 붙들고 있는 한 가지, 그것은 바로 소망 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한 사역이 성공적이면 하나님이 소망이시고, 우리가 실패하면 하나님의 소망이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한 사역, 우리의 어떠함과 상관없이 하나님은 여전히 소망이십니다. 소망 되시는 하나님은 신실하게 역사하십니다. 우리의 성공뿐만 아니라 우리의 실수, 잘못, 실패, 죄악 속에서도 하나님의 소망은 단 한 번, 단 한 순간도 실패하지 않으며, 그 소망은 결코 취소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욱 굳건하고 흔들림 없이 신실하게 그 자리에 계시며, 그렇게 저에게 임하십니다. 내가 약할 그때에 강함이라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강하시며, 우리의 영원한 소망이십니다.
ㅡ 기독학교 조승현 간사
나의 기억에 남은 전도여행
10월 13일 월요일, 나는 새벽 4시에 일어나 버스를 타고 김포공항으로 갔다.새로운 나라에서 친구들과 함께할 새로운 경험이 기대되었고, 추석 연휴로 일주일 만에 만나는 친구들이라 더욱 고조되는 느낌이었다. 김포공항에서 다 같이 만나 인천공항으로 이동해 홍콩을 경유하고 콜롬보로 가는 대장정을 떠났다.
오랜만에 친구들과 만나 그간의 일들을 나누고 들뜬 마음으로 즐겁게 친목을 도모했다. 그렇게 비행기를 타고 콜롬보에 도착했다. 스리랑카와 한국의 시차는 3시간 30분으로 스리랑카가 더 느리다. 새벽에 도착한 학생들은 숙소에 도착해 현지 선교사님과 앞으로 우리를 도와주고 가이드해 주실 현지 분들을 만났다. 크리스토퍼와 니라쉬라는 남자분들이셨고, 선교사님은 여자분이셨다.
다음날인 화요일, 우리는 숙소에 머물며 SUM 리허설을 했다. 그때까지 공연 준비를 온전히 마치지 못해 미숙한 상태였다. 학교에서 함께 연습할 때가 많았기에 그저 흘러가는 대로 멍하니 있지 말고, 정신을 딱 집중해서 철두철미하게, 완전무결하게 연습을 마무리해야 했다. 다음부터는 ‘그저 흘러가는 대로 멍하니 있을 것인가, 아니면 뜻을 세워 마음을 다해 집중할 것인가’의 선택의 순간에서 후회되는 짓은 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점심으로는 처음 현지 커리 볶음밥을 먹었는데, 거기서는 손으로 밥을 먹는 문화가 있었다. 신기했다. 나는 새로운 경험을 좋아하는지라, 또 밥이 맛있어서 즐거운 시간이었다. 저녁에는 현지 목사님과 여러 현지 분들, 크리스토퍼와 니라쉬, 그리고 Lyceum 학교의 교장 네이슨 선생님도 함께했다. 이분들은 모두 하나님을 믿는 분들이었고, 서로 자기소개를 하며 스리랑카에 관한 설명과 주의사항을 들었다. 해진이와 건우가 통역으로 섬겨주었다. 그리고 SUM 리허설도 그분들 앞에서 했다. 저녁으로도 커리 볶음밥을 먹었고, 그렇게 스리랑카에서의 둘째 날이 막을 내렸다.
SUM 공연은 은혜 안에서 잘 사용되었다.
셋째 날 아침, 우리는 한 장애인 학교에 갔다. 학생 수는 그리 많지 않았다. 아이들 한 명 한 명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하나님이 각각을 이끌어 달라”고 기도했다. 그동안 배웠던 좋은 가치들을 떠올리며 아이들을 섬겼다. 그 아이들 앞에서 한삼, 부채춤, 드라마, 소고 등 다양한 공연을 했고, 이것을 통해 아이들에게 좋은 영향이 가기를 바랐다.
두 번째로 간 곳은 ‘팜 센터’라는 곳이었다. 그곳은 일주일에 세 번 정도 아이들을 모아 교육시키는 곳이었다. 우리가 가서 SUM 공연도 하고, 함께 종이접기와 페이스페인팅을 했다. 아이들은 내 주위에 둥글게 모였고, 나는 영어로 단계별로 구조물을 만드는 방법을 알려주며 교제하고 웃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셋째 날이 끝났다.
넷째 날이 시작되었다. 우리는 늘 아침에 묵상을 했는데, 학생들이 요일마다 돌아가며 인도했다. 나는 웃시야 왕이 교만해졌던 내용이 기억에 남는다. 이날 우리는 학생 수가 약 300명 정도 되는 ‘로고스학교’로 갔다. 이곳은 대부분이 기독교인 아이들이라고 했다. 그래서 하나님에 관한 이야기를 전할 수 있었다. (스리랑카는 불교인이 70% 이상이라, 하나님을 전하기 어려운 나라이다.)
이때 SUM 공연을 했고, 나는 주원이의 멋진 피아노 연주와 건우의 간증이 기억에 남는다. 따스한 햇빛이 비춰오고, 귓가에 들려오는 솔직담백한 목소리가 마음에 남았다.그 후 우리는 여러 종교들이 있는 사원을 방문했다. 불교, 힌두교, 성당을 차례로 둘러보며 기도했고, 이 땅 가운데 하나님이 왕이 되시기를 구했다.
점심을 먹은 후 함께 오리배를 탔던 것도 기억에 남는다. 함께 보낸 그 즐거운 시간이 좋았다. 저녁에는 현지 사람들에게 한국 음식을 대접하고, 숙소 1층 연회실에서 다 함께 게임을 하며 놀았다. 공기놀이, 제기차기, 윷놀이 같은 한국 전통놀이도 하고, 스리랑카 전통게임도 했다. 가운데 물건을 두고 사회자가 번호를 부르면 해당 번호의 사람들이 달려 나와 물건을 겹치지 않고 자기 팀으로 가져오면 점수를 얻는 게임이었다. 문화와 문화를 나누는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다섯째 날에는 Lyceum 국제학교에 갔다. 그곳은 학생 수가 3,000명이 넘는 매우 큰 학교였다. 초·중·고가 모두 다녔다. 우리는 부채춤, 한삼, 소고춤 공연을 했고, 그쪽 학교에서도 전통북 연주와 춤을 보여주었다. 이번에는 예준이 누나가 간증을 했다. 학생 수가 워낙 많아 ‘이곳에 다니면 어떤 느낌일까?’ 궁금했다. 그곳에서 아침과 점심을 먹고, 점심 이후 공연을 진행했다. 즐거운 시간이었다. 같이 찍은 사진이 인화되어 지금도 내 옆에 있다.
이날은 아침에 묵상을 못 해서, 저녁에 함께 예배를 드리고 중보기도 시간을 가졌다.
스리랑카 여섯째 날, 토요일에는 뉴라이프 처치로 가서 SUM 공연과 모자이크 그림 만들기를 했다. 교회에서 점심을 먹었고, 몇몇 아이들이 내게 사인을 요청해 멋들어지게 써주었다. 태권도 발차기도 보여줬다. 이곳에서 스리랑카 국화인 연꽃을 선물받았다.
저녁에는 카페에 갔다. 그곳에서 다 같이 찬양을 드렸다. 그 시간이 너무나 평화롭고 아름다웠다. 천장은 물류창고처럼 매우 높았고, 그래서 탁 트인 느낌이 들었다. 한국어와 싱할라어, 그리고 다른 언어로 들려오는 멜로디가 아름다웠다.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아이들과 이야기하고 장난치던 소소한 순간들도 소중하고 즐거운 추억으로 남았다.
일곱째 날, 일요일. 호텔 루프탑에서 찬양하며 예배를 드렸다. 싱할라어, 타밀어, 영어, 한국어 — 네 개의 언어로 울려 퍼지는 찬양이 참 좋았다. 경치도 아름다웠고, 그때 받은 연꽃과 자석 기념품도 마음에 남았다.
이날 오후에는 스리랑카에서 가장 큰 쇼핑몰에서 쇼핑을 했고, 다음날부터 이틀간 ‘돌핀호텔’이라는 곳에서 머물며 맛있는 밥을 먹고, 수심 3미터의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며 친구들과 TV도 보고 즐겁게 놀았다. 그리고 아홉째 날, 우리는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번 전도여행에서 나는 많은 것을 얻었다. 먼저, 새로운 문화를 알아가는 시간이 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하나의 세계는 다른 세계를 만나 더욱 충격적이게 아름다워진다.”
한국에 있던 내가 스리랑카의 삶과 문화를 보고 경험하면서, 새로운 가능성이 열리는 느낌이었다. 스리랑카의 삶의 방식에서 배울 점과 시도해 볼 점들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길이 열리는 것에서 희망이 피어올랐다.
또한 관계에 있어서 무시당할까 두려워하거나 초조해하기보다 서로를 받아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나는 받아들여질 자격이 있는 사람이다’라는 확신도 생겼다.
어떤 한 사람이 휩쓸리지 않고 굳건하고 지혜롭게 상대방을 믿어주기 시작한다면, 그 공동체에는 매우 긍정적이고 큰 변화가 시작될 것이다.
이번 전도여행에는 건강관리, 하스피, 웍듀티, 물품관리, 서기 등 여러 Job이 있었는데, 맡은 일을 잘 수행하며 다양한 경험을 얻었다. 각자의 역할이 합쳐져 전도여행이라는 목적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며, ‘혼자 무엇을 이루는 것도 중요하지만 함께할 때 더 큰 변화와 성장이 일어난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만석교회에서 하루 묵고 전도여행 디브리핑을 했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순탄하지만은 않았지만, 힘든 일이 있어도 하나님을 의지하며 그분을 숲으로 삼아 나아갈 수 있었다. 서로 사랑하려는 마음이 있었기에, 아주 즐겁고 감사한 전도여행이었다.
ㅡ 기독학교 2학년 김주영

